밀란 쿤데라, 『느림』

Milan Kundera, La lenteur, 1995.

김병욱 譯, 2판, 민음사, 2012(1995).

 

“신의 창들을 관조하는 자는 따분하지 않다, 그는 행복하다. 우리 세계에서 이 한가로움은 빈둥거림으로 변질되었는데, 이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빈둥거리는 자는 낙심한 자요, 따분해하며, 자기에게 결여된 움직임을 끊임없이 찾는 사람이다.” (9쪽)

“끊임없이 스스로를 대중에게 전시하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춤꾼은 비난할 수 없는 자가 되어야 해. 그는 파우스트처럼 악마와 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천사와 계약을 맺은 거야. 그는 자신의 생을 한 편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려고 하고 그 작업을 천사가 돕지. 왜냐하면 잊지 마, 춤은 예술이기 때문이야! 자신의 생을 한 편의 예술 작품의 소재로 보려는 그 강박 관념 속에 춤꾼의 참 본질이 있어.” (29쪽)

“자신의 생각들을 널리 펴는 자는 사실 타인에게 자신의 진실성을 납득시키고, 그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리하여 세상을 바꾸기를 갈망하는 자들 부류에 속할 소지가 있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 […] 이는 흉물스럽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 대중화된 모든 생각은 조만간 그 생각의 저자를 공격하는 쪽으로 돌아서며 그가 그것을 생각해 냈을 때 맛보았던 쾌감을 앗아가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30~31쪽)

“선택되었다는 것은 신학적 개념이다. 아무런 공덕 없이, 어떤 초자연적 평결에 의해, 신의 자유로운, 또는 변덕스러운 의지에 의해, 예외적이고 범상찮은 뭔가로 뽑혔다는 것. 바로 이러한 확신 안에서 성자들은 더할 수 없이 잔혹한 형벌들을 견뎌 내는 힘을 길렀다. 이 같은 신학적 개념들은 각각 나름대로 모방되어 우리 인생의 사소한 일들에 반영된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너무나 평범한 삶의 저열함을 (다소간) 괴로워하며 이로부터 벗어나 스스로를 고양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가 제각기 그 같은 고양에 합당하다는, 이를 위해 선택되었고 예정되었다는 (다소 강렬한) 환상을 경험했다.” (59쪽)

“사람들이 당대 역사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마치 베토벤의 작품 백서른여덟 곡을 연이어 연주하되 다만 각 악곡의 첫 여덟 소절만 연주하여 소개하는 그런 대연주회와 흡사하다. 만약 십 년이 지나서 또 같은 연주회를 연다면, 아마 각 곡의 첫 번째 음정 하나씩만을, 즉 연주회 전체에 걸쳐 백서른여덟 개의 음정들을 마치 하나의 멜로디처럼 연주할 것이다. 그러나 이십 년이 지나서는 베토벤의 음악 전체가 매우 길고 날카로운 하나의 음정으로 요약될 것인데 아마 이는 귀가 먹던 첫날에 그가 들었던, 매우 높고 끝없이 길기만 하던 바로 그 음과 흡사할 것이다.” (105쪽)

 

(2017.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