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ütze, Sebastian. Caravaggio: The Complete Works.

Caravaggio: Das vollständige Werk. Taschen, 2009.

Trans. Karen Williams. Taschen, 2009.

 

카라바조가 직접 남긴 자료는 작품을 제외하면 몹시 드물다. 편지 한 통조차 없다. 말년(즉 30대 중반 이후)에 줄곧 도피 생활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족도 제자들도 없었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가 카라바조의 삶에 관해 아는 사실들은 주로 줄리오 만치니Giulio Mancini(1558~1630), 조반니 발리오네Giovanni Baglione(c. 1566~1643), 조반 피에트로 벨로리Giovan Pietro Bellori(1613~1696)의 전기에 의존한다. 만치니는 분명 카라바조와 개인적 친분이 있었고 로마 미술계를 잘 아는 감정인이었으나, 카라바조의 작품에 관한 그의 설명은 체계적이지 않고 불완전하다. 1642년에 화가 발리오네가 출간한 전기에는 질투심과 경쟁 의식이 묻어난다. 1672년에 나온 벨로리의 전기는 라파엘로에서 출발하여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1560~1609)와 니콜라 푸생Nicholas Poussin(1594~1665)을 거쳐 카를로 마라티Carlo Maratti(1625~1713)에 이르는 예술의 전개 과정을 이상적인 것으로 서술하면서, 카라치의 대척점에 있는 예술가로 카라바조를 끌어 온다. 요컨대 두 저작은 예술가 전기가 흔히 그렇듯 카라바조에게 호의적이거나 그를 당대 미술의 중심에 두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카라바조의 상이 정립되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마우리치오 칼베지Maurizio Calvesi는 보로메오 추기경의 정신을 이어받은 가톨릭 교회 개혁을 카라바조가 열렬히 지지했다고 주장하지만, 페르디난도 볼로냐Ferdinando Bologna는 그가 이단자에 가까운 탕아로서 고위 성직자들과 대립했다고 본다. 카라바조의 삶에 관한 몇 안 되는 사실 중 일부만으로 그의 삶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의 한계다.

카라바조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그의 교양 수준과 종교관은 어떠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의 후원자들에 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지만, 후원자의 정치관이나 종교적 신념, 예술적 관심 등이 피후원자와 일치한다는 법은 없다. 카라바조의 성격에 관해 알려진 바를 미루어 볼 때, 그가 당대의 종교 서적이나 복잡한 철학 개념, 예술 이론 등을 탐구하는 데에 몰두했을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시모네 페테르차노Simone Peterzano(c. 1540~c. 1596)의 작업실에서 수련했고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 몬테Francesco Maria Del Monte(1549~1627) 추기경처럼 조예가 깊은 후원자들이 있었으며 교회로부터 수 차례 작품을 의뢰받은 사실을 보건대, 그가 르네상스 예술 이론에 무지했다거나 가톨릭 개혁 시기에 벌어진 종교화의 역할에 관한 논쟁을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

지금껏 마땅한 관심을 받지 못한 자료들이 있는데, 카라바조 당대에 그의 회화적 발명품을 모방하거나 변형한 다른 화가들의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카라바조를 개인적으로 알고 그의 작업 방법에 익숙했다. 이들은 자신의 작품에 카라바조의 기법을 차용함으로써 그가 당대에 어떻게 수용되었고 해석되었는지 드러낸다.

 

(2017.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