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완 윌리엄스, 『복음을 읽다—로완 윌리엄스의 마르코 복음서 읽기』

Rowan Williams, Meeting God in Mark, SPCK, 2014.

김병준 譯, 비아, 2018.

 

“마르코 복음서 곳곳에서 예수는 […] 자신을 카리스마적인 치유자와 비슷한 부류로 엮지 못하게 애를 쓰는 동시에 그들을 향해,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특별한 임무를 알아차리라고 촉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66쪽)

“정말로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눈이 감겨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이들입니다. […] 하느님의 역사를 생각할 때 우리는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고, 하느님의 권능이 극적으로 드러나고, 모든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모든 의심을 몰아낼, 더는 어떠한 말도 필요 없게 만들 답을 내려줄 하나의 사건을 하느님께서 일으키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방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79~80쪽)

“마르코는 기적과 표징이 신속하고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 현실에 두려워하고 곤혹스러워하던 교회를 위해 이 복음서를 썼습니다. 당시 교회들은 온갖 핍박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심각한 위협이 그들의 삶을 옥죄고 있었고 실패가 이어졌습니다. 마르코는 두려움과 혼란에 빠져있던 공동체의 삶을 향하여, 그 삶 속에서 복음서를 쓰고 있습니다.” (85쪽)

“마르코 복음서 전체에 걸쳐서 시종일관 사람들은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지 말라는 예수의 말을 듣지 않고 이야기를 퍼뜨렸습니다. 그런데 결말에 이르러 드디어 예수에 대해 사람들에게 가서 전하라는 말을 듣자, 그 누구도 아무런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습니다.” (89쪽)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 희생당하는 이들의 전형적인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왜 그러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고 정확한 이유를 말해주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아는 것은 모든 것이 이미 그들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이 악몽에서 살아서 나갈 길은 없다는 것뿐입니다. […] 어쩌면 마르코 복음서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인간을 절멸시키는 데 모든 힘을 쏟아붓는, 의미도 없고 말도 안 되지만 그 누구도 맞서지 못하는 권력 체계가 꾸민 덫에 빠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술하는 카프카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104쪽)

 

(2019.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