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abel Howard. This is Caravaggio.

Lawrence King, 2016.

 

“그는 거리낌없고 무심하고 생색내기 좋아하는 사람인 동시에, 지적이고 자신만만하고 매력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거칠면서도 예민했던 그는 행동과 사색을 오갔다.” (6쪽)

“카라바조가 견습생 생활을 시작하고부터 로마에 입성하기까지 8년 간 그린 그림이 한 점도 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 또 그는 절대 밑그림을 그리는 법이 없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그가 견습 생활에 그리 충실하지 않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의 것으로 알려진 최초의 작품들이 다소간 서투른 부분을 담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이 추측은 더욱 힘을 얻는다.” (8쪽)

“살인을 저질러 밀라노에서 달아나야 했다는 발리오네의 전언이 참이든 아니면 살인 후 투옥되어 변호 비용으로 돈을 탕진했다는 후대의 기록이 맞든 간에, 로마에 도착한 21세의 카라바조는 돈 한 푼 없이 거리를 누비는 거친 젊은이였다.” (8쪽)

“17세기 초에는 로마의 회화 자체가 무미건조했다. 재탄생한 고전주의는 미켈란젤로에게서 절정에 이르렀지만, 그가 사망하고 40년이 흐르자 정체될 대로 정체되었다.” (11쪽)

“카라바조가 바쿠스에게 자기 얼굴을 그려 넣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무질서와 정념의 신인 바쿠스로 분하고서, 그는 다분히 고의적인 도발로써 후원자들과 화가들에게 변화를 촉구한다.” (11쪽)

“체자리 형제는 자신들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당시의 유명 화가들이 사용하지도 않은 방법으로 카라바조가 작업했다는 데에서 두려움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12쪽)

“카라바조의 회화는 건달과 집시들의 수상쩍은 짓들을 재미있는 구도로 제시하면서도 결코 도덕론을 설교하지는 않는다. 참신한 소재와 아카데미식에서 탈피한 기법 덕분에, 카라바조의 그림들은 피카레스크 소설이 대유행한 당시 유럽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소장자들이 원작을 공개하지 않으려 노력했음에도 모작이 넘쳐났고, 「사기 도박사들」의 경우 17세기에만 30점 이상의 모작이 만들어졌다.” (19쪽)

“이는 거의 멜로 드라마라 할 만큼 극적이고 잔혹한 그림이다. 이는 도덕에 관한 성찰이며 과거와 현재의 예술가들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카라바조는 충격을 주는 법을 잘 알았지만 이것이 그의 작품의 최종 목표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32쪽)

“이 맥락에서 보자면 카라바조 작품의 폭력성은 놀라울 것이 없다. 그러나 폭력과 정념으로 가득한 그의 작품이 설득력을 얻는 원천은 그의 의식적인 세부 묘사 그리고 신중한 의도 하에 과장된 빛과 동작이다.” (36쪽)

“condensed narrative, mysterious darkness and raking light” (47쪽)

“희년이 지나자 교회는 점차로 빈곤 문제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카라바조 주변에는 온통 가난한 사람 투성이였고 이 그림을 마주한 사람들도 그와 같았다. 카라바조는 빈자들에게 영광된 역할을 주었다. 더러운 맨발을 드러낸 사람의 손과 어린 그리스도의 발끝은 겨우 터럭 한 올만큼 떨어져 있다.” (52쪽)

 

(2019.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