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저녁의 해후』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4)

3판, 문학동네, 2013(1999).

 

“그분은 어디서 배운 바 없이, 또 스스로 노력한 바 없이도 저절로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분이었다. 그분이 아직 살아 있지 않은가. 그분의 여생도 거기 합당한 대우를 받아 마땅했다.” (246쪽)

“맹범씨는 네 시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얼토당토않다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방금 경험한 네 시간은 그가 여직껏 살아온 고르고 유연하게 흐르던 시간과는 전혀 단위가 다른 시간이었으므로.” (300쪽)

“남을 용서하기란, 마음으로부터 정말 용서하기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기에 용서받을 자격을 얻는다는 것 또한 지극히 어려운 일이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어느 한 구절에만 매료된다는 건 옳은 일이 못 된다는 걸 곧 알게 되었다. 가장 지적인 척 그 구절에 구애를 받다보면 함부로 용서를 받지 않겠다는 마음이란 결국 아무도 용서할 수 없다는 교만에 다다르게 된다.” (320쪽)

“오장육부와 뼈마디의 기능이 왕성하고 서로 조화로운 때는 아무도 그것들을 각각 느낄 수가 없다. 다만 그것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완벽하게 화합해서 만들어내는 쾌적한 힘, 싱싱한 의욕, 빛나는 욕망, 아름다운 꿈, 진진한 살맛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352쪽)

 

(2019.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