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5)

3판, 문학동네, 2013(1999).

 

“내가 직조해내는 나의 일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수없이 떴다 풀었다 다시 뜨는 듯한 낡은 실이 몇 가닥씩 어떤 때는 온통 끼어들곤 했다. […] 예전에도 수없이 저질렀음직한 잘못과 어리석은 짓, 헛된 욕망의 되풀이는 사는 걸 쉽고 익숙하게도 했지만 때로는 비명을 지르고 싶도록 진부하고 무의미하게도 했다.” (20쪽)

“어쩌다 접어든 길을 다만 처음 접어든 길이라는 이유 하나로 끝까지 완주하고 난 후 꼭 속임수에 당한 것처럼 갑작스럽게 엄습한 허망감에다 저렇게 허둥지둥 환약을 털어넣고 있는 것이다.” (101쪽)

“그이가 들꽃에 유식한 걸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이가 나보다 많이 아는 것 중에서 유일하게 나를 주눅들게 하지 않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359쪽)

“물건으로 나를 생각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 그렇다고 뭘 주고 싶은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죠. […] 그래도 물건은 아녜요. 호화로운 식사를 한 끼 사죠. 즐거웠던 기억이 물건보다는 속절없으니까요. […] 전에는 어떡하면 같은 돈이라도 낯나게 쓰나가 중요했었는데 지금은 안 그래요. 흐지부지 쓰는 게 훨씬 더 중요해요. […] 같이 차 마시고 나서 찻값을 내는 거, 몇이서 택시를 같이 탔을 때 택시값을 혼자서 내는 것 따위가 흐지부지 쓰는 건데 바보같이 보이기 십상이지 누구 하나 고마워하지 않는 씀씀이죠. […] 흐지부지 쓴다는 건 바퀴에 기름을 치는 행위에 다름아니죠. 그러잖아도 하루하루 살기가 힘이 들어 죽겠어요.” (390~391쪽)

 

(2019.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