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그 여자네 집』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6)

3판, 문학동네, 2013(1999).

 

“거기서 느끼는 깊은 평화에다 대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아무리 큰 기쁨이나 슬픔도 그 위를 스치는 잔물결에 지나지 않았다. 결코 죽은 평화가 아니었다. 거기 가면 풀도 예쁘고 풀 사이에 서식하는 개미, 메뚜기, 굼벵이도 예뻤다. 그의 육신이 저것들을 키우고 있구나, 나 또한 어느 날부터인가 그와 함께 저것들을 키우게 되겠지, 생각하면 영혼에 대한 확신이 없어도 죽음이 겁나지 않았고, 미물까지도 유정했다.” (43~44쪽)

“어머니 옷갈피에는 어디서 난 건지 흔히 향비누라고 일컫는 냄새 좋은 세숫비누가 구메구메 들어 있었다. […] 행여 늙은이 냄새가 날세라 그렇게 철저히 대비를 했던 것이다.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추레해지는 걸 극도로 두려워했던 어머니다운 자기 관리였다. 그런 어머니가 지금 딸네 집에 악취를 풍기며 누워 있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무슨 권리로 어머니를 그렇게까지 희롱해도 된단 말인가. 하필이면 우리 어머니를. 나는 천방지축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조화를 부리는 인간살이에 분노를 걷잡을 수가 없었고, 그건 곧바로 아버지를 향해 폭발했다.” (141쪽)

“요컨대 자신에게 정떨어지기가 싫었던 것이다. 교직과 작가는 그의 생계와 자존심을 떠받쳐주는 양쪽 기둥이었다. 자기 확인을 위해서도 일 년에 한두 편 정도의 중단편을 어떡하든지 써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지만 시간을 쪼개는 것보다도 교사에서 작가로 완벽하게 변신하지 않으면 한 자도 안 써지는 게 문제였다.” (287쪽)

 

(2019.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