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태, 『인간의 조건』

시대의창, 2013.

 

“6틀을 마무리했을 때가 일을 시작한 지 8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내게는 8이라는 숫자가 단순히 24를 3등분한 결과 이상으로,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한계를 경험적으로 검토하고 나서 얻어낸 최적의 균형점 같았다. […] 하루 12틀 작업을 경험하고 나자, 이전까지 ‘쉴 틈 없이 일했다’라는 표현을 너무 느슨하게 사용했다는 걸 깨달았다. 영어강사도 쉴 틈 없이 일하고 주식 중개인도 쉴 틈 없이 일한다. 하지만 선원과 비교한다면 이들의 쉴 틈 없는 노동은 하나의 비유이자 관용어구일 뿐이다.” (62~63쪽)

“평생을 손님으로만 살아온 사람들은 손님을 상대하면서 느끼는 좌절감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것이 통발을 들어올리는 것만큼 버거워진다.” (161쪽)

“일 끝나고 돌아가서 밀린 빨래 하고 남편 저녁 차려주고 아이들 수련회 준비해주고 막내 딸 숙제 도와주고 첫째 아들 감기 걸려 병원 갔다 오고 시댁 제사라 큰아주버님 댁 가서 음식 장만하고 두 시간밖에 못 자다 왔다거나 […] 등등. 마치 남자들이 […] (대단히 의심스러운) 무용담을 늘어놓듯, 여자들은 혼자서 몇 개나 되는 집안일을 때려눕혔는지 경쟁적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당연히 여자들의 이야기가 더 믿음이 가고 감동적이었다.” (371쪽)

 

(2019.11.03.)